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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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부. 박씨는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시명(金時鳴)의 처(妻)이다. 박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섬긴 것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맛있는 버섯을 먹고 싶어 하였지만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뒤뜰의 뽕나무에 버섯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채취하여 드렸다. 버섯을 따면 그 자리에 또 다시 돋아나곤 하여 시부모님이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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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내면의 알기 위해서는 그 마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마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마을의 역사가 된다. 명동마을은 60세대 정도의 식구들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 일까? “우리 마을에는 박씨가 30세대 정도 됩니더. 옛날에는 박씨가 더 많았는데 나가는 사람도 있고 해서 세대가 많이 줄었습니더. 그래도 아직까지는 박씨가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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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마을에는 신한균 도공예 가까운 곳에 불곡 도자기가 있다. 이 집안이 도자기를 하게 된 계기는 아주머니 남편이, 골짜기에 이사 온 지 32년 째 된 신정희 씨 집에 월급쟁이로 허드렛일을 하러 들어가서 그 집에 한 15년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때 그릇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15년을 신정희 선생님 밑에 있은 뒤, 서운암 절에 삼천불 도자 부처님을 만들다가, 작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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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극수(61). 시인이며 수필가인 그는 한마디로 명동의 정신을 기록을 통해 계승코자 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마을에서 제일 먼저 들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돈이 아까워 새참도 먹지 않았다. 소출이 적어 경작하지 않는 산답(山畓)을 소작으로 얻어 밤을 지새우며 죽도록 일해도 동생들 학비며 기본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벅찼다. 빚은 자꾸 늘어만 가고, 모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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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열(69세) 씨는 합천군 용주면이 고향이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고, 부산 토박이와 결혼한 뒤로 부산 사람이 되었다. 처가에서 합판공장을 경영하고 있었기에 인도네시아 등지로 다니면서 원목 수입을 함으로써 장인을 도왔다. 날로 사업이 번창하자 일선에서 물러나 호주로 이민을 갔다. 7년여를 살다 1986년에 입국하여 장인을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짧지 않은 시기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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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배(49세) 씨는 한국전력공사에 합격하여 교육을 마치고 부산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한전 양산출장소에 자원, 1984년 10월 24일자로 발령을 받아서 근무를 시작한 게 양산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양산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되어갈 무렵,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권태기였다고 여겨지는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와서 여러 가지를 사업이랍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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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효충사 주변에 대해 양산시는 지난 2003년 유적 정비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지금의 소토리 1173-2에 소재한 효충사를 포함한 1만㎡ 부지에 사당 정비는 물론 전시관, 편의시설, 휴식공간, 문화체험공간 등을 조성하는 역사공원화사업이었다. 하지만 효충마을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문화재 지정으로 인한 재산권이 침해된다면서 박제상 생가가 효충마을에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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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던 조선시대 정려 터. 양산의 효부(孝婦)와 정열(貞烈)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비각이 있었던 터로서, 경상남도 양산의 효부인 엄석규(嚴錫圭)의 아내 박씨(朴氏)와 정열(貞烈)인 엄국영(嚴國永)의 아내 이씨(李氏)의 행적을 표창하기 위해 정려각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양산군(梁山郡)」편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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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은 첩첩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열려있는 곳이라고는 동그란 하늘밖에 없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운진리에서 태어난 박상권 씨는 1973년 소양댐이 건설되면서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대처로 나왔다. 고향 양구를 떠나 처음 취업한 곳이 청평에 있는 제지공장이었다. 성실하게 일한 것이 사장의 눈에 띄어 1974년에 같은 계열의 이곳 ‘국일농원’으로 차출되어 오게 되었다. ▶ 농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