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군수를 역임한 문신. 권중은은 1906년(순종 즉위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에 양산 최초의 근대학교인 양성학교(養成學校)를 설립하였다. 양성학교는 권중은이 전경무관(前警務官) 전태준(全泰準)과 일본 헌병대장 마쯔오[松尾]로부터 의연금을 받아내고, 이 의연금을 바탕으로 전의관(前醫官) 최현근(崔現根), 정지모(鄭智謀), 사인(舍人) 안세...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던 조선 후기 재실 터. 충렬사가 국명으로 철폐될 때 재실(齋室)로 바뀌었다. 1877년(고종 14)에 양산군수 이만도(李晩燾)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학자 김상효(金相孝)의 시문집 『경재유고(敬齋遺稿)』의 잡저 중에 양사재에 관해 기록된 「양산현학양사재기(梁山縣學養士齋記)」를 보면 선비를 양성하는 방법과 제생들이...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공집(公執), 호는 서벽(棲碧). 아버지는 우재(又齋) 엄석주(嚴錫主)이며, 엄국영(嚴國永)이 형이다. 엄신영은 음직으로 가감역겸기장군수(假監役兼機張郡守)에 임용되었으며,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관직을 그만두었다. 엄신영은 부모에게...
1392년(태조 1)부터 1910년(순종 4)까지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시는 1413년(태종 13)에 양산군(梁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동래부(東萊府)에 편입되었다가 1603년(선조 36)에 복구되었다. 1897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읍내(邑內)·동면(東面)·상서(上西)·하서(下西)·상북(上北)·하북(下北)·구포(龜浦)·대저(大猪)의 8개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