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개곡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적·유물들을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이나 고려 전기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古)기왓장·주춧돌·구들장 등이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대밭골에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기마을은 1860년(철종 11) 이전에는 본의곡이라 불려졌다. 이는 ‘의(義)를 본으로 하는 곳이다’ 라는 뜻인데 관련 문헌은 없으나 어느 때인지 의와 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산간에 모여 살게 되면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863년(철종 14) 이전까지는 본의곡이었으나 1872년(고종 9)에 본의리로 되었으며 그 후...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상의 얼인 의(義)를 근본으로 여긴다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본법마을에 최초의 주민들이 주거를 시작한 시기를 대략 5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인근에 위치한 법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및 고분의 축조 형태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후 주거 상황 및 마을의 명칭에 대한 구전이나 문헌적 자료는...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귀농 정착민이 이주하면서 마을 명칭을 ‘신명마을’이라 지었다.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마을·내연마을·장흥마을을 병합하여 평산리라 하였다. 그 후 1962년 귀농 정착민이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명마을은 울산 방면으로 국도 7호선을 따라가면 된다. 영천초등학교에서 창기마을, 월평삼거리, 덕계 종합...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조선 중기 가마 터. 양산 법기리 요지에는 창기마을 뒤편 산 중턱에서 기슭에 이르기까지 여럿의 요지가 남아 있었으나, 근래 대부분 논과 밭으로 개간되었다. 창기마을 뒤편 산 위의 유적에서 채집된 것은 주로 백자편이다. 그 중에는 낮은 온도에서 구워 표면이 녹청자(綠靑磁) 같은 것이 섞여 있다. 처음부터 백자가 아닌...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비가올 ‘령’자와 무당 ‘자’자를 합친 ‘신령령(靈)’과 마을 앞에 내가 흐르고 있어 ‘내천(川)’을 합하여 ‘영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마을은 삼한시대 변진(弁辰)의 거칠산국(居柒山國)의 갑화양곡(甲火良谷), 즉 지금의 동래에 속했다가 97년 신라 석탈해왕 때 정복되어 거칠산군으로 변경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 창기마을에서 지내는 당산제. 창기마을 당신의 당명은 창기당산이다. 당집은 마을 서쪽 50m 고지 위에 있고, 기와를 올린 일반 집에 건평이 1평 남짓 된다. 내부는 신체(神體)가 석패 형식으로 있고 제단도 있다. 신목은 없다. 골매기할매 강씨(姜氏)를 부락의 수호신으로 모신다. 제관은 두 명으로서, 40대 남녀로 부정 없는 자를 뽑...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본래 활과 창을 보관하던 곳이라 하여 창기(槍基)라고 하였다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무기 ‘창(槍)’자를 성할 ‘창(昌)’자로 바꾸어 창기(昌基)가 되었다. 삼한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도요지로서 명성이 높았으나 임진왜란 당시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그 맥이 끊긴 것으로 추측된다. 창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