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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268
한자 洪仁犯
영어음역 Hong Inbeo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면
대표경력 양산농민조합 간부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홍인범(洪仁犯)은 1931년 4월 4일 창립된 양산농민조합의 일원으로 지주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적극적인 농민 운동을 펼치다 1932년 3월 16일 양산경찰서에 수감되었다. 1932년 2월 20일 양산농민조합은 양산사회단체회관에서 소작권 영구 확립, 지세 및 기타 공과금 지주 부담, 소작료 4할 등의 내용을 결의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양산농민조합을 통한 소작인들의 지주에 대한 요구 조건이 강화되자 양산경찰서가 같은 해 3월 15일 이봉재(李鳳在)를 검속한데 이어 다음 날인 16일 조합 간부 17명을 검거하였다. 당시 홍인범도 조합 간부의 한명으로 검거되었다.

이로 인해 같은 날 양산농민조합 집행 위원이었던 전병건의 주도하에 검속자 가족과 조합원 300여 명이 구속 간부의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 군중을 향해 발사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양산농민조합 간부 윤복이(尹福伊)와 이만줄(李萬茁)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조합원 300여 명이 동원된 이 사건으로 17명이 소요죄로 기소되고 3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관련하여 홍인범은 부산지방법원에서 벌금 50원을 선고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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