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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233
한자 山幕-
영어의미역 Sanmak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산막동 산막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형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99명[남 55명, 여 44명]
가구수 44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산막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산골에 막을 치고 살았으므로 산막이라 하였다. 둘째,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원효산에 올라가 막을 치고 하룻밤 쉬어간 곳이라 하여 산막이라고 한다. 셋째, 천성산 기슭에 있는 반고굴(磻高窟)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요석공주(遙石公主)가 산에 막을 치고 있었다 하여 산막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설은 모두 세 가지이지만 결국 원효대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산막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영동마을 북쪽으로 약 500m 지점인 소토초등학교 남쪽에 청동기시대 유적인 소노 지석묘가 있고, 남쪽의 상북정마을 지석묘와 상신기마을 지석묘가 영동마을과 같은 축선에 나란히 있다.

천성산을 배경으로 양산천과 10m 정도의 높이로 구릉 지대가 발달해 있는 점으로 보아 수렵, 어로, 농경에 적합한 환경인 이곳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진 것으로 보인다. 산막마을에 대한 첫 번째의 명칭유래설과도 부합된다고 할 수 있으나, 원효대사와 관련된 설화에서 보듯이 신라 때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면서 산막동이 되었다. 2002년 4월 11일 예부터 바깥마을 또는 영동마을이라 불리던 곳을 분동하여 영동마을이라 칭하게 되었다. 현재는 2개의 행정리 중 본 마을에 속한다.

[자연환경]

마을의 동쪽으로는 인근 천성산에서 발원한 산자락과 면해 있고, 나머지는 최근 조성되기 시작한 산막공단에 둘러싸여 있는 형편이다. 마을 내로는 뒤쪽 천성산 자락에서 발원된 작은 내가 흘러 바로 밑에 위치한 안산못으로 흘러들어 간다. 마을 뒤쪽에 위치한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 논이 형성되어 있으나, 최근 확장되고 있는 산막공단 및 호계산업공단으로 인해서 농경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공단이 바로 인접해 있어, 주거 환경은 다소 나쁜 편에 속한다.

[현황]

산막동의 중앙에 있는 마을로 2007년 현재 총 44세대 99명이 살고 있다. 산막마을도 호계산업단지에 편입되어 곧 철거될 예정이어서 영동마을만 남게 될 형편이다. 마을회관은 회의실, 경로당, 구판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북쪽은 사창골을 경계로 소토리, 동쪽은 호계동, 남쪽은 호계천을 경계로 북정동, 서쪽은 양산천을 경계로 효충마을이 있다. 경부고속국도와 양산~언양 간 국도 35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양산IC가 있다. 국도 35호선을 타고 언양 방면으로 진행하다가 보면 종합운동장사거리와 공단입구사거리를 차례로 지나 산막공단입구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3㎞정도 직진하게 되면 이화디지털로지스틱스라는 상호를 가진 공장을 만나게 된다. 이 곳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직진하면 산 쪽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나온다. 마을은 그 도로 끝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내에는 조선 헌종대의 충신인 유자미 외 7위를 모신 사당인 칠현사(七賢祠)와 그 앞쪽에 문화 유씨 칠현을 추모하는 곳으로 구복재(龜伏齋)라고 하기도 하는 경모재(景慕齋)가 건립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 산막마을은 호계산업단지에 편입되어 2008년 4월 보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이 절차가 끝나는 대로 곧 마을 전체가 이주하게 될 예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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