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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송담사 묘정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30002
한자 梁山松潭祠廟庭碑
이칭/별칭 송담사 서원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 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서2길 14-13[가촌리 707-7] 송담 서원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규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5월 14일연표보기 - 양산 송담사 묘정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양산 송담사 묘정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건립 시기/일시 1788년연표보기 - 양산 송담사 묘정비 건립
현 소재지 송담 서원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서2길 14-13[가촌리 707-7]
원소재지 송담 서원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서2길 14-13[가촌리 707-7]
성격 묘정비
관련 인물 백수회(白受繪)
재질 석비
소유자 송담 서원
관리자 송담 서원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송담 서원 안에 있는 조선 후기 묘정비.

[개설]

양산 송담사 묘정비는 조선 후기 문신 송담(松潭) 백수회(白受繪)[1574~1642]의 충의를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백수회는 19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붙잡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귀환 후 광해군의 난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24년(인조 2) 사옹원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아 예빈시 참봉에 봉하였다. 1628년(인조 6) 시무를 논한 여섯 조목의 상소를 올렸다.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1642년(인조 20) 향년 69세로 사망하였다. 1670년(현종 11년) 나라에서 호조 참의를 증직하였는데 이렇게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올려 주는 것을 가자(加資)라고 하였다. 이후 백수회가 살았던 곳을 가자방(加資坊)이라 했고, 그 가자방이 변하여 지금의 가촌리(佳村里)가 되었다. 양산 송담사 묘정비는 2009년 5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1696년(숙종 22)에 군수 조무훈이 백수회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군의 동쪽에 충열사를 건립하였으며, 1717년(숙종 43) 이건하여 ‘송담사(松潭祠)’라고 사액하였다. 이어 1788년(정조 12) 백수회의 일대기와 공적을 기록한 묘정비와 비를 보호하는 비각을 세웠다. 현재의 송담 서원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 당시 건물은 없어지고 빈 터만 남았던 것을 1985년 중건한 것이다.

[위치]

가촌리 송담 서원 내에 있다.

[형태]

비석의 재질은 작은 강자갈이 섞인 사암(砂巖)이고, 받침인 부좌(趺坐)는 방부형(方趺型)이며, 머리 쪽에는 옥개석을 올렸다.

[금석문]

묘정비는 일명 ‘서원비’라고도 하며 비신(碑身)의 두전(頭篆)에는 ‘송담사 묘정비(松潭祠 廟庭碑)’라 적혀 있다. 4면에 기록된 주요 내용은 송담의 일대기와 서원의 건립 취지, 서원의 주인을 모시는 인물에 대한 추앙의 문장이다.

[현황]

양산 송담사 묘정비송담 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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