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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신흥사 대광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30007
한자 梁山新興寺大光殿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원동로 2282-111[영포리 268]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도윤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1992년 1월 15일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7호에서 해지
문화재 지정 일시 1992년 1월 15일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 보물 제1120호로 승격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양산 신흥사 대광전 보물 재지정
건립 시기/일시 1657년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01년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해체 수리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1년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벽화 보존 처리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 벽화 보존 처리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2년연표보기 - 양산 신흥사 대광전 정밀 실측 조사
현 소재지 신흥사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원동로 2282-111[영포리 268]
성격 불교 건축물
양식 다포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신흥사
관리자 신흥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신흥사에 있는 불당 건축물.

[개설]

신흥사 대광전은 부처님의 말씀 그 자체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불전 건축물로, 1657년(효종 8) 건립된 다포 양식의 맞배지붕 집이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우리나라 불당 건축의 가장 보편적인 규모이다. 1801년(순조 1) 중수하면서 그린 벽화[양산 신흥사 대광전 벽화, 보물 제1757호]가 남아 있다. 1976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1992년 1월 15일 보물 제1120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영포리 이천산에 위치한 신흥사 경내에 위치한다. 신흥사의 주불전, 즉 중심 건축물로 사찰의 제일 안쪽 높은 곳에 있다.

[변천]

양산 신흥사 대광전을 해체, 보수할 당시 발견된 상량묵서에 “순치 십사년 정서년 사월 십칠일 상량기(順治十四年丁西年四月十七日上樑記)”라고 기록되어 있어 1657년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흥사는 신라 기림왕 4년(301) 또는 7세기 원효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화가 있으나, 현재의 신흥사는 대광전이 처음 건축된 1657년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801년 건물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이와 관련된 기록인 「신흥사 대웅전 중수기(新興寺大雄殿重修記)」를 작성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당시 건축물의 명칭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19세기 이후 대광전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건축물이 퇴락하여, 1985년 당시 주지인 영규 스님의 주도로 대대적인 수리와 중창이 진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 형식 맞배지붕 단층집이다. 공포는 외3 출목, 내4 출목으로 안팎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건물을 좀 더 높고 크게 보이도록 하였다. 건물의 지붕은 도리를 일곱 개 쓴 7량집이며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형태를 한 맞배지붕 형식이다. 정면의 각 칸에는 세 짝 또는 다섯 짝의 분합문을 설치하여 모두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양쪽 측면에는 제일 앞쪽에만 한 짝의 분합문을 설치하여 일반 참배객의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건물의 후면에는 각각 두 짝의 문을 설치하였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기 위한 고주가 측면의 기둥과 같은 위치에 자리하여 불단 뒤쪽에도 공간이 있어 벽화가 그려져 있다.

[현황]

1986년 해체 보수 당시 단청이 새로 그려졌으나, 벽화는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지은 건축물이지만 건축의 기법 측면에서는 조선 전기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어 전선 전기와 후기의 건축 기법이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건물의 좌우 측면 벽과 후불벽, 공포 사이 좁은 벽체인 포벽 등에 그려진 벽화는 1801년 작품으로 색채와 문양의 수법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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