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벌어진 운동. 경상남도 양산 지역은 선각자들의 비밀결사운동 관련을 시작으로 1919년 3월 13일 하북면의 신평 의거, 3월 27일의 양산읍내 의거, 이후 1920년대의 청년운동·신간회운동·소년운동·부인회운동·근우회운동, 1930년대 전반기의 혁명적 농민운동, 1941년의 학생운동 등이 계속되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 출신으로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 양산 지역에서의 본격적인 항일 독립 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양산 지역에서는 인근의 밀양이나 울산 지역에서처럼 3·1운동을 주동적으로 이끈 비밀단체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윤현태와 같은 선각자들이 조선국권회복단에서 활동한 만큼 윤현태의 영향을 받은 지인과 후배들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결성된 신간회 양산지회. 양산청년동맹의 청년 운동가들과 양산 지역의 양심적 지주 계급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신간회 양산지회를 설립하였다. 1927년 5월 반제 통일 전선체로 좌우익 합작 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되자 동년 11월 양산청년동맹을 결성한 주요 청년 운동가들은 곧바로 신간회 양산지회를 결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이풍(田二豊)은 1920년에 조직된 양산청년회의 일원으로 활동해오던 중 1927년 신간회의 결성과 더불어 양산에서도 청년 운동 및 사회 운동 전반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할 즈음 이 지역의 주도적인 인물로 부상하였다. 1927년 6월의 긴급 총회를 통하여 양산청년회의 기존 간부들이 총사직함과 동시에 전이풍이 김기오(金基午),...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 지역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 속에 청년 단체들이 속속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양산에서도 1920년 7월 양산청년회가 출범하게 되었고 정진호(鄭進浩)도 양산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1926년 11월의 방향 전환론의 제창과 더불어 이듬해인 1927년 2월 15일에 신간회가 결성되...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정치가이자 경제인. 지영진은 서울 보성중학교 2년 중퇴 후 청년기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신간회 활동에 참여했다. 1928년 김철수(2대 경상남도지사, 도쿄 2·8 독립운동 주도) 등의 주도로 창립한 신간회 운동에 동조하여 1929년 2월 20일 신간회 양산지회 임시집행부 부회장을 맡았으나, 그 이듬해 5월에 신간회 양산지회에서 완전히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