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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358
한자 湖浦-
영어의미역 Hopo Village
이칭/별칭 호포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호포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효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310명[남 170명, 여 140명]
가구수 137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호포마을금정산(金井山)에서 낙동강(落東江) 쪽으로 여러 등성을 이루며 밀려나와 있는 형세로 볼 때 요수다의복호망월(妖獸多疑伏狐望月)형이라 한다. 즉 요사하게 의심을 품은 여우가 김해 월촌 지역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여우 ‘호(狐)’자와 낙동강 변 포구로서 ‘포(浦)’자를 붙여 호포(狐浦)가 되었다. 1925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한자를 바꾸어 호포(湖浦)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호포는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 초기부터 신라의 변방 국경의 요충지로서 방어 군대 주둔 지역으로 추측된다. 호포성과 원(院)이 있었는데 왜성 축조 때 없어졌다고 한다. 왜성은 가산리 산52-1번지와 52번지 일대에 있었으나 지하철 기지창 부지에 편입되어 지금은 기록만 남아 있다. 또한 도요지와 기와공장 등의 유적과 삼형제바위 못산 . 잉어 명당에 얽힌 전설이 각각 전해 오고 있는 곳이다. 마을의 형성은 신라 초기부터 가야와의 국경지대로 방어 군대가 주둔하면서 군인이 점령한 곳이고 그 치중 보급관계로 인한 사람들이 가산 중리마을 부근에 거주하였으며 그 후 호포진(弧浦津) . 원(院)등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면 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추측된다. 가산리 도요지가 국영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때 호포원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곳의 도자기가 먼 곳까지 수출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성촌의 내력은 신라 초기 경주설씨(慶州薛氏)가 먼저 살았다 하나 지금은 그 후손이 없다. 본격적인 성촌은 1905~1930년까지 경부철도 공사 때 호포 철교공사 인부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1925년 행정구역 명칭 변경 때 지금의 호포(湖浦)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호포마을은 동쪽으로 금정산(金井山)[802m] 줄기에 자리하고 있으며 양산천낙동강이 접하는 양산시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2007년 현재 총 137가구에 31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 북구와 접하고 있다. 시설로는 호포역과 호포철교 등이 있고, 주요 지명으로는 금식골, 삼형제바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이 있고, 유적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축조한 호포 왜성지가 남아 있다. 국도 35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호포마을을 통과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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