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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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의 세거 성씨.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으로 광주군에 봉해진 안방걸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판사공 안몽득의 손자 안우(安宇)가 입향하여 형성된 봉사공파이다.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大將軍)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광주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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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효필이 두연대의 모습과 인간 삶의 무상함에 대하여 읊은 한시. 두연대(斗淵臺)는 양산시 서쪽 어곡(魚谷) 안에 있었는데,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두연대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작자인 일야당(一也堂) 안효필(安孝弼)[1855~?]은 1882년(고종 19)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인물이다. 1~2구는 달도 찾아들기 어려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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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이자 효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순장(舜章), 호는 율농(栗儂). 계산 안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만성재(晩惺齋) 안평중(安平重)이며, 아버지는 안효필(安孝弼)이다. 부인은 동래정씨이며, 아들은 안종석(安鍾石)이다. 안병원은 1882년(고종 19)에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서 출생하였다. 안병원은 효자로 이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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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의 교생 안시명을 참봉으로 임명한 교지. 「문관고신교지」와 더불어 「진사시급제교지」가 1977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진사시급제교지」는 1882년 양산의 유학 안효필이 진사시에서 3등급 56등으로 합격하였다는 내용을 담은 교지이다. 「문관고신교지」와 「진사시급제교지」 모두 가로 40㎝, 세로 50㎝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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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廣州). 할아버지는 일야당(一也堂) 안효필(安孝弼)이다. 안효필은 안우(安宇)의 후손이다. 안종철은 1510년(중종 5) 여름에 삼포(부산포·제포·염포)지역에서 왜란이 발발하자 자원 출정하여 전공을 많이 세웠다. 『진중유집』이 있으며, 그 중 「병상유감시(病床遺感詩)」에서 ‘생사가 공간에 처해 있으니 무엇이 있고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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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안종석 선생은 양산 향토문화 연구의 거목이었다.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한 안종석가 1984년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뒤 미망인 김순덕에 의해 발간된 『석헌집(石軒集)』(1992)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간추려 적으면 다음과 같다. 고 안종석 선생은 광복 후 박제상을 기리는 사당을 거금의 사비로 세움으로써 민족정신을 바로잡고자 했다. 1949년에는 협소한 소토초등학교를 사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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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학문을 익히기 위해 지은 집. 율리정사는 『오륜행실도』, 『삼강행실도』, 『사기』,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1672년(현종 13) 안희청이 진사 안효필의 생가에 학문을 익히기 위해 지은 정사로, 처음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집이었다. 그러다 율리정사에 살았던 안종석이 1970년에 틀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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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영봉이 율리정사의 모습과 기풍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율리정사(栗里精舍)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으며, 1672년(현종 13)에 죽산(竹山) 안희청(安希請)이 안효필(安孝弼)의 생가에 학문 전념을 위해 지은 정사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율리정사의 기풍을 매일 비추는 밝은 달빛과 끝없이 흐르는 차디찬 냇가에 빗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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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최치원이 임경대의 풍광과 자신의 심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최치원(崔致遠)[857~?]의 문집인 『고운집(孤雲集)』권1과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권19에 「황산강 임경대(黃山江 臨鏡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임경대(臨鏡臺)는 황산강(黃山江: 낙동강의 옛 이름)가에 있으며, 최치원이 노닐면서 「임경대 제영」을 지었다고 하여 최공대(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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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이만이 춘설루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춘설루(春雪樓)는 조선시대 양산군(梁山郡) 관사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 「춘설루 제영」은 양산군수였던 김이만(金履萬)[1683~1758]이 정무(政務)를 마치고 관사 서쪽에 있던 춘설루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지은 시이다. 오언율시의 한시로서, 1구와 2구는 정무 이후 한숨을 돌린 상황을 이야기하였고, 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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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고종 15) 이만도가 춘화당에서 백성들을 걱정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춘화당 제영」의 내용으로 보아 이만도(李晚燾)[1842~1910]가 양산군수가 된 1876년(고종 13)으로부터 2년이 지나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이다. 이 「춘화당 제영」은 조선이 일본에 병탄되자 단식으로 생을 마감했던 이만도의 애민 정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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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의 양산읍성 내에 있던 정자 터. 춘화당은 원래 양산읍성 내에 있었다고 전하는 조선시대 정자이나, 현재는 터만 전하고 있다. 춘화당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이를 묘사하는 선현들의 시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춘화당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시 몇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거정 작) 말을 몰아 달린 병이 늙음과 함께 겹쳐서/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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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의 정문 문루. 향교는 유교의 성현(聖賢)을 제사하고 지역 사회의 인재 양성과 교화를 위해 고려시대부터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공립 교육 기관이다. 향교의 구조는 교육과 제례의 두 공간으로 나뉜다. 강학하는 명륜당과 유생들의 기숙소인 동·서재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孔子)와 공자 제자 및 유현(儒賢)들을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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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김이만이 양산향교 풍영루에서의 감흥과 학문에 정진하기를 청하며 읊은 오언율시의 한시. 풍영루는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의 정문으로 김이만(金履萬)[1683~1758]이 양산군수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에 소실되었던 것을 1684년(숙종 10)에 낙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존에 전해오던 것을 1878년(고종 15)에 양산군수 이민하(李玟河)가 중수하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