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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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과 4월에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신평마을과 양산읍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던 오택언(吳澤彦)이 한용운의 지시로 통도사에 내려와서 통도사 강원(講院) 학생 대표들과 만나 만세 시위를 할 것을 결의하고 1919년 3월 13일 신평(新坪)마을에서 시위를 일으켰다. 또 인근 부산에서는 1919년 3월 11일 부산 초량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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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양산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운동.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던 오택언(吳澤彦)이 한용운의 지시로 통도사에 내려와 통도사 강원(講院) 학생 대표들과 만나 만세시위를 할 것을 결의하여 1919년 3월 13일 신평의거가 발생하였다. 이어서 양산읍내에 1919년 3월 11일 부산에서 발생한 초량일신여학교 시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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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재호는 유년 시절 윤현진으로부터 항일 정신을 배웠다. 이후 1919년 3월 27일 양산군 양산읍에서 장이 선 날을 이용하여 엄주태, 박삼도, 전병건, 정주봉 등과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강재호는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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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8년 3월 23일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4월 4일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소년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3월 16일 구속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를 탈옥시키기 위해,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의 주동자 전병건(全秉健)의 지령에 따라 300여 명의 조합원을 동원하여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검거되었다. 193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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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1년에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에 최달수(崔達守) 등의 권유로 소년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3월 15일 양산경찰서에서 ‘소작료 4할 결의’를 하였다는 이유로 조합원 간부 17명을 구류 처분하자, 전병건(全秉健)의 지시에 따라 16일 조합원 300여 명이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다. 김태근도 주동자 김장호(金章浩) 등과 함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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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 출신으로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 양산 지역에서의 본격적인 항일 독립 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양산 지역에서는 인근의 밀양이나 울산 지역에서처럼 3·1운동을 주동적으로 이끈 비밀단체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윤현태와 같은 선각자들이 조선국권회복단에서 활동한 만큼 윤현태의 영향을 받은 지인과 후배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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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향교는 1396년(태조 6)에는 양산초등학교 주위에 있었으며 『조선환여승람』 원사편에 보면 성안의 현 양산문화원 뒤편 느티나무 동쪽에 충렬사가 있었다고 되어있다. 이곳에 충신, 공신의 신주를 이만도 군수가 모셔왔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충렬사 주위에 60여개의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19년에 발생한 양산 독립만세운동 때문에 일본 헌병이 충렬사를 파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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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경상남도 양산시에 설립되었던 사설 유치원. 1923년 2월 8일 양산 유지들의 발기로 청년회관에서 양산유치원 발기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4월 23일 양산청년회에서 양산유치원을 위해 강연회를 개최하였는데, 전병건의 사회로 시작된 이 강연회에서 권득구는 ‘아동심리’, 김철수는 ‘아동교육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양산유치원의 재정은 양산의 유지들이 양산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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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청년 운동 단체. 1919년 3·1운동 이후 각 지역별 청년 운동은 문화 진흥과 산업 진흥을 목표로 야학 운영, 토론회, 강연회, 풍속 개량, 체육 활동 등을 펼쳤다. 양산청년회는 1920년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회, 토론회, 야학 등 문화 운동을 펼친 대표적인 사회 운동 단체이다.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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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주태(嚴柱泰)는 1919년 3월 27일 전병건(全秉健)·박삼도(朴三道) 등과 같이 독립 선언문(獨立宣言文)과 경고문 등을 인쇄하여 배포할 것을 협의하고 200여 매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양산읍(梁山邑) 장날에 운집한 3,000여 민중에게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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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당시 부산진 일신여학교와 동래고보의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양산 지역에서는 엄주태(嚴柱泰)의 주도 아래 이상환·엄주태·전병건(全秉健)·박삼도(朴三道)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27일 양산장날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출동한 일경에 의해 엄주태·전병건·박삼도 등이 체포되었으나, 1차 시위 때 검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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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혁이라는 별칭이 있다. 전병건은 엄주태 등과 함께 1919년 3월 27일 양산장날을 기해 일으킨 3·27양산의거를 주도하여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1년부터 양산청년회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제6회 총회 때 집행위원으로 피선되면서 양산청년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27년 결성된 양산청년동맹의 제2회 총회에서 집행위원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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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정선(旌善). 병한(秉翰)은 별명이고, 본명은 전병익(全秉翼)이다. 전병한은 1915년 3월 25일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는데(제3회), 엄주태(嚴柱泰)·서상근(徐相根) 등이 동기생이다. 엄주태·전병건(全秉健)이 주도한 양산만세운동의 모의에 동참하여, 1919년 3월 27일 양산장날을 기해 3,000여 군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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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이풍(田二豊)은 1920년에 조직된 양산청년회의 일원으로 활동해오던 중 1927년 신간회의 결성과 더불어 양산에서도 청년 운동 및 사회 운동 전반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할 즈음 이 지역의 주도적인 인물로 부상하였다. 1927년 6월의 긴급 총회를 통하여 양산청년회의 기존 간부들이 총사직함과 동시에 전이풍이 김기오(金基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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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기옥(鄭冀鈺)은 1906년 아버지 정재관(鄭在瓘)과 어머니 김복림(金福林)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났다. 1929년 이명련(李命連)과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으며, 1999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타계했다. 1932년 일본 제국주의의 고율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다 구속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를 구출하는 작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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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정치가이자 경제인. 지영진은 서울 보성중학교 2년 중퇴 후 청년기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신간회 활동에 참여했다. 1928년 김철수(2대 경상남도지사, 도쿄 2·8 독립운동 주도) 등의 주도로 창립한 신간회 운동에 동조하여 1929년 2월 20일 신간회 양산지회 임시집행부 부회장을 맡았으나, 그 이듬해 5월에 신간회 양산지회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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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항일운동가. 홍인범(洪仁犯)은 1931년 4월 4일 창립된 양산농민조합의 일원으로 지주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적극적인 농민 운동을 펼치다 1932년 3월 16일 양산경찰서에 수감되었다. 1932년 2월 20일 양산농민조합은 양산사회단체회관에서 소작권 영구 확립, 지세 및 기타 공과금 지주 부담, 소작료 4할 등의 내용을 결의한 것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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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항일운동가. 황소준(黃小俊)은 일제강점기 소작 관행을 혁신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다 일본 경찰에 검거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이다. 1932년 2월 20일 양산농민조합이 양산사회단체회관에서 소작권 영구 확립, 지세 및 기타 공과금 지주 부담, 소작료 4할 등의 내용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4일 양산농민조합의 조직부장 이봉재(李鳳在) 일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