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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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지도는 향토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볼 수 있는 도구이다. 이는 지도가 종합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양산의 모든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양산의 고지도는 제작 당시의 위치 정보를 이미지로 전달하기 때문에 텍스트로 쓰인 지리서보다 위치 파악에 효율적이다. 따라서 양산의 고지도는 양산 지역의 향토 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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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속하는 법정리. 물금리 지역은 옛날 신라와 가락국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할 때 두 나라의 관리들이 상주하면서 이곳을 왕래하던 사람들과 물품을 조사·검문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관리들의 검색이 심하여 강을 건너는 두 나라 사람들이 매우 불편해 했다. 그래서 양국 대표가 모여서 의논하기를 이 지역만은 서로 ‘금하지 말자’는 합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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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물금(勿禁)은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황산역(黃山驛)[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물금취수장 자리]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북쪽의 밀양과 삼랑진, 남쪽의 김해 칠성포·부산포를 연결하던 황산나루(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물금취수장 입구)가 위치했던 낙동강의 주요 교통 요지였다. 이러한 연유로 조선 후기 개시된 물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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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한 도별 역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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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에 설치된 원(院)의 하나. 원(院)은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들이 묵었던 공공 숙박 시설이다. 원은 교통 사정이 원활하지 못한 당시에 공적인 업무를 보는 여행자들을 도둑이나 맹수로부터 보호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는 황산역·윤산역·위천역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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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리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상삼리라 하였다. 마을에 삼림이 매우 울창하였으므로 ‘삼(森)’ 자를 붙여 지명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 양산군이 하북방(下北坊)과 상북방(上北坊)으로 분리될 때 상삼리는 하북방에 속하였다. 1897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북면(中北面)에 속하였다. 당시 중북면의 면치는 상삼리 일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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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선시대 상삼마을에는 서울과 부산을 왕래하던 좁은 오솔길 옆에 나그네가 쉬어가던 주점이 몇 채 있었으며, 인근의 황산마을이 번성할 때는 술집이 늘어나서 주막거리라고도 불렀다. 또한 상삼마을 양쪽으로 양산천이 굽어 감고 있고 뒤쪽에는 큰 도랑이 흘러 마을 모양이 양끝은 가늘고 중앙은 굵은 형태를 보여, 바다 위의 뜬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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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서부 지역은 조선시대 수륙 양면의 요새지로 황산진에 황산역이 설치되었던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황산역은 1857년(철종 8)에 낙동강이 범람하여 그 후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439번지 일대로 옮겨 갔다고 한다. 1936년 화학동을 물금리로 개칭할 때 물금리의 동쪽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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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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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오봉산(五峰山)의 다섯 용이 크게 울면 성인(聖人)이 태어난다는 전설(五龍出聲 聖人之世)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이로 인해서 과거 조선의 영남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보러 가기 위하여 상경할 때 오봉산 정상에서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여 기도를 올려 다섯 용이 울면 합격한다는 전설이 있다. 성산마을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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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건설회사인 성원건설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도 성원이라 불렀다. 성원마을이 속한 물금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옛부터 용화사 일원의 낙동강변에 물금진(勿禁津)이 있었는데, 그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물고미(勿古味), 물금리(勿禁里)로 되었다고 한다. 현 물금 동부리, 서부리는 옛부터 황산진(黃山津), 황산역(黃山驛)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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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원(院)의 하나. 원(院)은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들이 묵었던 공공 숙박 시설이다. 원은 교통 사정이 원활하지 못한 당시에 공적인 업무를 보는 여행자들을 도둑이나 맹수로부터 보호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는 황산역·윤산역·위천역 등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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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립된 재실. 소경재는 죽림칠현 김칠득(金七得)과 증산(甑山) 박승장(朴承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재실이다. 소경재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소경재기(紹景齋記)」와 「현효사이건기(賢孝祠移建記)」가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경재기」 “ 양산군 현효사는 김죽림(金竹林), 박증산(朴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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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 신전마을에서 매해 음력 1월 15일에 마을 수호신에게 베푸는 민속 의례. 신전마을에서는 매해 한 차례 마을의 번영과 주민들의 소원 성취를 염원하며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마을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제의를 베풀고 있다. 신전마을의 당산은 숫당산(할배당산)과 암당산(할매당산)이 있다. 당사는 없고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숫당산(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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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왜식(倭式) 석성. 물금 증산리 왜성은 일명 양산성(梁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원래는 황산역(黃山驛)이 있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경상도 동남의 양산 지역이 교두보로서 중요하였기 때문에 황산역이 있었던 곳에 증산리 왜성을 쌓아 침략과 방어에 이용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명과 일본 사이의 강화 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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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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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전통시대에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에 역과 원이 설치되었다. 역(驛)은 정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되었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숙식 제공과 빈객을 접대하는 숙박 시설로 설치되었다. 우리나라 역참은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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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한 도별 역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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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원효산 중턱에 위치한 대바우골에서 솟아난 물이 급하게 흘러가는 곳이라고 위천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위천(渭川)은 중국의 감숙성(甘肅省) 위원현(渭源縣)에서 황하로 흐르는 위수(渭水)라는 강의 모양에서 유래된 것으로 봐야 할 듯싶다. 이 위수는 그 모양이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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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위천(渭川) 지역은 동래 지역과 언양 지역을 잇는 중간 지역에 있던 지역으로 봉화산(249m) 밑의 지역이다. 위천은 원적산에서 발원하여 양산천에 합류하는 지류인데, 하천의 명칭이 지역의 명칭으로 쓰이는 것은 일반적이다. 위천산(현재의 봉화산)에는 과거 봉수대 자리였던 위천봉대가 자리하고 있다.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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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선시대 황산역(黃山驛)[현재는 물금읍 소재]의 속역인 윤산역(輪山驛)이 있었으므로 윤산(輪山) 또는 유산(由山)이라 하였다. 『양산군읍지』(1786) 역원조에 “윤산은 군의 서쪽 5리에 있으며 지금은 유산(由山)이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어 지명 변화가 나타나 있다. 유산동은 처음부터 민간인이 살던 자연 촌락이 아니고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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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由山이라는 이름은 과거 윤산(輪山)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 윤산은 옛 유산역 동쪽에 있는 둥근 반월산(半月山)으로 가리키는 말인데, 흔히 윤달의 전달을 평달 혹은 온달, 윤달을 반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윤산은 반월산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윤산의 본래 뜻이 ‘반달’이다 보니,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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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양산군지』에 따르면 윤산(輪山)은 유산리 앞들 가운데 있는 둥근 야산으로 일명 반월산(半月山)이라 한다. 지금의 양산지방산업단지 한전변전소 서쪽에 있는 산으로 일제강점기에 신사(神祠)가 있었다가 해방과 동시에 없어졌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40여 개의 찰방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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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현재 황산역 내에 있는 정자로 옛 관리들의 휴식 장소였다. 일아라는 명칭은 한문공(韓文公)의 『승청벽기(丞廳壁記)』의 한 구절을 취한 것이다. 『양산군지』에는 일아정과 관련하여 조선 숙종 때의 명신 우암 송시열 기문(記文)이 기록되어 있다. 1630년(인조 8)에 찰방(察訪) 정백순(鄭百順)이 일아정을 창건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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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살았던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세운 비. 엄자산의 처 숙부인 경주이씨 비가 양산시 북정동 이원수공원 안에 있다. 석비로 비신의 크기는 높이 90㎝, 폭 36㎝, 두께 18㎝이다. 1885년(고종 22)에 건립되었다. 다른 비는 엄규석의 처 정부인 밀양박씨를 높이기 위해 그의 아들이 세운 것이다. 높이 89㎝, 폭 37㎝, 두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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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산. 증산은 양산시 물금읍에 위치한 시루처럼 생긴 산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63호로 지정되었으나 1997년 일제강점기 등록문화재 재심의 시 왜성이라는 이유로 사적 지정에서 탈락되었다. 일설에 증산 서쪽 낙동가의 사지리(沙旨里)라는 마을 이름에 착안한 사지성(沙旨城) 혹은 사도(沙道)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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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충과 효와 열을 행했던 사람들.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효충사의 효충계 서문에는 충효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릇 충효열(忠孝烈) 세 가지는 천성에서 나오는데, 사람의 도리 가운데 큰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성인을 내리시어 군주로 만들고 스승으로 삼아서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집집마다 깨우쳐서, 왕궁과 도성에서부터 시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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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이 있던 중앙동사무소 바로 옆 건물에는 양산향토사연구회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다. 법인단체는 아니지만 양산의 향토사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75세의 고령이신 정진화 선생이 『양산읍지』의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진화 선생은 30년 가까이 경찰공무원과 물금면장을 역임한 뒤 향토의 역사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20년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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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호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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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 직속 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 양산 지역에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 아니라 군수(종4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다. 황산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