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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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가촌리의 명칭은 가자방(加資坊)이었다. 가자방의 가자(加資)는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말하는 것으로 백공이라는 사람이 1671년(현종 12) 호조참판으로 가자가 되어 가촌에 거주하였으므로 가자로 불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가자(佳自)·가촌(嘉村)·가촌(佳村)으로 변했는데, 이것은 절의를 지키고 예절바르고 착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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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리의 소노마을은 동래정씨가, 율리마을은 광주안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소노마을 지명은 작을 소(小)와 나라 노(魯), 즉 작은 노나라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작은 나라라는 뜻에 맞게 동리를 중심으로 밖의 마을을 외리, 안 골짜기에 있는 내리, 마을 뒷산 이름을 ‘하늘 만딩’이라고 불러왔다. 소노마을은 동래정씨 문중을 중심으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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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곡리는 천성산의 맥을 이은 큰골과 맞밭골의 두 개의 곡(谷)이 뻗어 합쳐진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물, 유적으로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에 절이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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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석리에 있는 동래정씨 재실. 경구재는 동래정씨 경상도관찰부주사(慶尙道觀察府主事) 및 통정비서감승(通政秘書監丞)인 구계(龜溪) 정인휘(鄭寅暉)를 받드는 재실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새롭게 축조되었다. 경구재는 본래 고려 공양왕 때 승정원 비서를 역임한 정인휘의 묘실(墓室)이었다고 한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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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한국군은 북한군에 의해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려나게 되어, 결사항전지역으로 맞붙었던 곳이 바로 낙동강 전선이었다. 양산은 낙동강 하구에 해당되는 지역이므로 이곳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전쟁이라고 하면 서로 총을 겨누며 살생만 한다고 생각하여 군인들의 희생만 언급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민간인에게도 큰 피해를 주게 된다. 그래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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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숲속의 마을이라 하여 순수 우리말로 숲리라 하였으며 한자를 쓸 때는 신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남쪽에 위치하는 마을이라고 하여 남부라 부르고 있다. 남부마을이 처음 형성된 곳은 현 마을의 서북부 낙동강 변 개밭들역으로 조선 중기 이후 강릉유씨, 김해김씨, 동래정씨 등 순으로 입촌하여 40여 호의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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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당곡마을은 하서면(下西面)이었던 당시의 면소재지였다. 영천이씨·동래정씨·성주이씨 등이 마을을 형성하여 왔으며, 영천이씨의 집성촌이다. 당곡마을은 양산시 원동면사무소에서 서북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지방도 1022호선이 지난다. 낙동강 변으로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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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돌이 많아서 ‘대석’이라 하였고, 또 마을 뒤쪽에 지금은 ‘제일강산’이라고 써놓은 큰 바위가 있어 ‘대석’이라고도 하였다. 이 바위에 돌을 얹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면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나주정씨 정덕(丁德)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김해에서 낙동강을 건너 피란 와서 홍룡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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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유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동래(東萊)는 현재 부산(釜山)과 양산(梁山)의 일부 지역을 차지했던 옛 행정 구역으로 경상남도 남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고 하는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공(甫尹公) 정지원(鄭之遠)을 기세조(起世祖)로 하여, 후손들이 세거지인 동래를 본관으로 삼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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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는 각자 특색 있는 향기를 내뿜는 소노마을, 율리마을, 효충마을이 있다. 이제부터 마을의 향기를 따라, 마을 찾아 역사 찾아 소토리 여행길을 떠나보자. 경부고속도로 양산 IC에서 벗어나 우회전하여 통도사 쪽으로 방향으로 300m 정도 오면 좌측에 어곡터널과 공단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면 벌써 소토리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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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소토리 동래정씨 사당인 소노서원 뒤편에 성림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있다. 이곳에 처음 들어가면 아담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장중한 느낌을 받게 된다. 성림사는 소노마을 이장 말에 의하면, 1967년쯤 율리마을 사람인 안종석 씨가 후원하고 승려 최옥선이 주도하여 창건되었다. 처음에 이곳에 사찰을 지을 때는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원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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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마을에서는 따로 모임을 만들 필요도 없이, 수시로 마을주민들이 함께 모여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듯이 마을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형태도 많이 변하여, 이제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조건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모임을 만든다. 소토리에서는 노인회, 친목회, 청년회, 부녀회와 같이 다양한 모임을 가지며 마을 주민들이 함께 유대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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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맑은 공기를 자랑하는 이곳 마을들은 동래정씨와 광주안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기도 하다. 주민들 대부분이 논밭을 일구며, 평온한 삶을 살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농경지였던 곳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평온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양산시가 소노마을, 율리마을, 효충마을 등이 포함되는 소토리 일대를 공장지역과 준공업지역으로 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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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을과 율리마을, 효충마을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양산천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었던 마을들이다. 35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동네의 가운데를 관통하고,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형태는 크게 변하였다. 율리마을은 공장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마을 취락지구로 지정되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의 초입부에 율리 마을회관이 있고, 그 앞에 자리 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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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논과 밭들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에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공단이 들어오면서 마을 일대의 땅값은 다른 지역보다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양산의 지역별 지가 상승을 보면 상북면 소토리 공업지역이 표준공시지가의 높은 상승으로 15.1%의 상승률을 보였다.(『양산신문』, 2008년 6월 2일) 그러나 땅값 상승은 마을 사람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공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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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상의 얼인 의(義)를 근본으로 여긴다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본법마을에 최초의 주민들이 주거를 시작한 시기를 대략 5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인근에 위치한 법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및 고분의 축조 형태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후 주거 상황 및 마을의 명칭에 대한 구전이나 문헌적 자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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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리의 율리마을과 효충마을의 최영애 이장과 안경자 이장은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이장들이다. 상북면 26개 마을 중 여자 이장은 모두 5명이다. 이것은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처음 여성이장은 율리마을의 최영애 혼자였는데, 이후에 효충마을의 안경자 이장을 비롯하여 내전마을, 장재마을, 외석마을이 추가되어 5개 마을로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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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동래정씨 재실. 성기재는 동래에 거주하는 동래정씨 동지공파(同知公派) 후손들이 동면 법기리 천성산 동쪽 지맥 끝자락에 이장한 19세 정치문(鄭致文)과 부인 전주최씨, 17세손 통정대부수사조참판(通政大夫守史曹參判) 정기영(鄭基永)을 추모하기 위해 1971년 4월 20일에 건립한 재실이다. 매년 10월에 향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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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을에 들어서면 두 개의 오래된 사당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동래정씨 사당인 소노서원이다. 동래정씨가 이곳 소노마을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 말 조선 초기로 보인다. 동래정씨의 가보를 보면 고려 초기에 그들의 조상이 경주에서 부산 동래로 들어왔고 이들 중 일부가 고려 말에 소노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동래정씨가 소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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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동래정씨 서원. 1835년(헌종 2)에 사림이 소산사(蘇山祠)를 창건하여 춘추로 제향을 올려오다가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고, 1929년에 동래정씨 문중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상의사(尙義祠)와 강당이 풍우에 퇴색되어 1985년에 사우(祠宇)를 중건하고 강당을 확장하여 정규 서원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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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신주마을은 본래 신정(新亭), 주진(注津) 두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양산군 서면 신정리(新亭里)와 주진리(注津里)로 편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산읍지초(梁山邑誌草)』에는 신정, 용포, 주진을 용포(龍包)로 개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용포라고 한 연유는 지형을 보면 토곡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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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이자 효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순장(舜章), 호는 율농(栗儂). 계산 안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만성재(晩惺齋) 안평중(安平重)이며, 아버지는 안효필(安孝弼)이다. 부인은 동래정씨이며, 아들은 안종석(安鍾石)이다. 안병원은 1882년(고종 19)에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서 출생하였다. 안병원은 효자로 이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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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안종석 선생은 양산 향토문화 연구의 거목이었다.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한 안종석가 1984년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뒤 미망인 김순덕에 의해 발간된 『석헌집(石軒集)』(1992)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간추려 적으면 다음과 같다. 고 안종석 선생은 광복 후 박제상을 기리는 사당을 거금의 사비로 세움으로써 민족정신을 바로잡고자 했다. 1949년에는 협소한 소토초등학교를 사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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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을 정지영(50)은 1997년부터 10년간 마을 이장을 한 경력이 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장을 하게 된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정지영은 3살 때 부모님과 함께 김해에서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곳 소노마을로 이사를 왔다. 이 마을은 동래정씨 집성촌인데 그도 동래정씨 참의공파이다. 부모님은 재실 관리를 하고 문중 소유의 논농사를 지으며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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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먼지를 풀풀 날리며 공사가 진행 중인 화성 파크드림 아파트 건설 현장. 이렇게 명동마을에도 점점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아파트 건설현장을 지나면 산으로 오르는 작은 샛길이 하나 보인다. 마치 도시에서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 같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길은 바로 시명골로 가는 입구이다. 샛길 입구에는 시명사, 청룡사, 기원정사, 시명골 쉼터 등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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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만(81세) 씨를 만났다. 귀 옆에 좀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망구(望九)의 노인이다. 그런데 휴대전화기를 목에 걸고 있다. 명함을 내미는데 특이하다. 자신의 이름 위에 곡부공씨대종회 이사 및 양산시종친회 회장이라는 직함 활자 크기가 이름보다 훨씬 크게 적혀있다. 그 뿐만 아니다. 한자 이름 밑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고, “만인의 사람을 알아보면, 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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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소산(蘇山). 조선 전기 예조참의를 지낸 정절(鄭節)의 8세손이며, 의능참봉(義陵參奉) 정희란(鄭希鸞)의 큰 아들이다. 동생은 임진왜란시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정호의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양산향교 교임이었던 정호인[1554~1624]은 공자의 위패를 교동으로 옮겨 지켰으며, 일본에 포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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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동일 조상의 후손들이 중심을 이루는 마을. 집성촌은 조선 초기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주로 사회의 지배층에 속하여 있으면서 중앙 정부의 관료층과 연관을 가지는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형성된 씨족 집단의 거주 촌락이고, 거주의 지속성을 보여 일정 지역의 복수의 촌락들을 형성하여 상호 교섭을 가진다. 파(派) 단위의 거주 범위는 상당히 넓고 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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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된 동래정씨 재실. 충보재는 동래정씨 25세손 충보공(忠甫公) 정상량(鄭尙良)과 그의 자손 10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재실이다. 1997년 4월 10일에 옛건물을 철거하고 재건하였다. 옛건물을 철거할 당시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삼기해팔월십이일묘시입주상량(崇禎紀元後三己亥八月十二日卯時立柱上樑)”이라고 쓰여 있어 1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