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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031
한자 十月抗爭
영어의미역 October Resistanc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민항쟁
발생(시작)연도/일시 1946년 10월 8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46년 12월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양산읍내 시장

[정의]

1946년 10월 8일 미군정의 정책에 맞서기 위해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항쟁.

[목적]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친일파 처단과 토지 분배 및 소작료 인하를 관철시키고자 일어난 항쟁이다.

[발단]

양산의 10월항쟁은 1946년 10월 8일 오후 1시 15분 양산시장에서 600여 명의 시위 군중들이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군중은 깃발을 앞세우고 ‘식량공출 반대’, ‘정권을 인민위원회로’, ‘친일파 배격·처단’, ‘토지의 무상몰수·무상분배’, ‘소작료 3·7제’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양산경찰서로 이동하였다. 시위를 진압하고자 경찰이 곧 출동하였으나 시위 군중들이 경찰을 구타하고 총을 탈취하면서 경찰서를 공격하였다. 그 뒤 미군과 경찰이 출동하자 시위 군중들은 산으로 피신하여 경찰과 대치하였다.

[경과]

양산의 10월항쟁의 특징은 다른 지역과 같이 면 단위가 아닌 군 단위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10월항쟁에 관여한 다수자는 언양 부근의 험준한 신불산에 입산하여 인민혁명군 제3지구사령부라는 명칭 아래 유격전을 하였다. 경찰과 부산지구경비대가 합동작전으로 수차에 걸쳐서 토벌을 하였지만 그때마다 유격대는 사전에 도주하여 경찰들은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

10월항쟁에 참여한 다수자들이 유격대를 형성하자 경찰은 1946년 12월 부산에서 파견된 서북청년회 별동대원 200여 명과 함께 토벌대를 편성하여 신불산 일대 유격대 거점을 공략하여 큰 타격을 입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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