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양산문화대전 > 양산의 마을 이야기 > 읍성마을 > 성내리의 기억들 > 기억의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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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향교는 1396년(태조 6)에는 양산초등학교 주위에 있었으며 『조선환여승람』 원사편에 보면 성안의 현 양산문화원 뒤편 느티나무 동쪽에 충렬사가 있었다고 되어있다. 이곳에 충신, 공신의 신주를 이만도 군수가 모셔왔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충렬사 주위에 60여개의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19년에 발생한 양산 독립만세운동 때문에 일본 헌병이 충렬사를 파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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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낙동강이 합천 황강 쪽에서 흘러오는 또 다른 줄기와 어우러진 삼량진부터 그 위용을 갖추니 여기서부터 물금까지 도도히 흘러내리는 모습은 차라리 장중한 교향악 같다고나 할까. 특히 낙동강 하구는 폭이 좁게 마감되어 그 흐름이 더욱 유장해 보이는데 어떤 풍수가는 그로 인해 영남에 인물이 많고 부자가 많이 난다고 한다. 강이 좁기 때문에 넘쳐흐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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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을 하고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을 한다.’는 속담이 있다. 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와 비례하여 걱정거리도 많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돈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버렸다. 물질만능주의가 되어버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돈이라는 것이 꼭 나쁘게 이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돈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돈, 그 이하의 가치도 혹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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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대표적 독립운동가 윤현진(尹顯振)[1892~1921]은 부산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부산광역시에서 출판되는 각종 책에 소개되어 부산 출신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윤현진은 부산 출생이 아니라 1892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할아버지 윤홍석[1843~1902] 동래부사와 사천군수를 지냈고, 아버지 윤필은은 동래부사, 경상우도 관찰사, 동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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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도 큰 사건인 6·25 전쟁. 이 시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 어디를 가도 남아있고, 또한 양산읍성도 6·25 전쟁에 대한 아픈 흔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세월이 흘러 이러한 흔적들도 점점 흩어져가고 있지만, 아픈 기억은 사람들의 뇌리에 좋은 기억만큼이나 오래 남아 있다. 특히 국민보도연맹사건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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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마을을 강타했던태풍 사라의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1959년 한가위, 차례를 모시고 나니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양산천이 흐르는 교리 다리목에 나가보니 옛날에 있었던 다리의 위쪽까지 물이 차 올라오는데 상류에서부터 소나무, 장농, 뒤주, 절구통, 뱀, 염소, 닭, 온갖 가전제품 외에 산사태로 여러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내려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