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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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小俊 |
영어음역 | Hwang Soj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 335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은정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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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 335 |
성별 | 남 |
생년 | 1885년 |
몰년 | 미상 |
대표경력 | 양산농민조합 간부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황소준(黃小俊)은 일제강점기 소작 관행을 혁신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다 일본 경찰에 검거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이다. 1932년 2월 20일 양산농민조합이 양산사회단체회관에서 소작권 영구 확립, 지세 및 기타 공과금 지주 부담, 소작료 4할 등의 내용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4일 양산농민조합의 조직부장 이봉재(李鳳在) 일행이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와 대석리 일대를 순회하면서 조합원 조직의 확대와 농민 대중의 단합을 통한 권익 보호 및 쟁취를 주장하는 연설을 진행하였다. 이로 인해 이봉주가 일본 경찰에 검속됨과 동시에 구류 25일에 처해져 부산형무소에 이송되었으며, 이어서 같은 월 16일에는 양산농민조합의 간부 17명도 검거되었다.
황소준도 그 중 한명으로 검거되어 구류 20일에 처해졌다. 이에 같은 날 양산농민조합 집행 위원이었던 전병건의 주도하에 검속자 가족과 조합원 300여 명이 구속 간부의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 군중을 향해 발사한 경찰의 총탄에 양산농민조합 간부 윤복이(尹福伊)와 이만줄(李萬茁)이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조합원 300여 명이 동원된 이 사건으로 17명이 소요죄로 기소되고 3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