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C01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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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향토사연구회 |
오래된 마을에는 마을이 이어온 역사만큼이나 그 지명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그 중 소노마을과 소토리 지명에 대해서는 향토 사학자들마다 의견이 매우 다양하다.
마을 주민들 중에 지명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볼 때에는 소노가 된 결정적인 원인을 소노서원에서 찾는다. 우리는 ‘공자님을 모시고 있는 작은 노나라’라고 해서 ‘적을 소’에 ‘노나라 노’자로 해서 소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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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서원
소계서원은 ‘깨어날 소’자를 쓴다. ‘노나라가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소노서원에서 모셔지고 있는 두 분이 임난 때 공자위패를 모시고 도망가서 지켰으니까, ‘노나라에 공자를 모신다.’는 그런 뜻이다.”라 하여 공자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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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계서원
그러나 ‘소노’라는 지명에 대해서 마을이 앉은 장소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분도 있다. “소노마을 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과거 중국에 노나라가 소쿠리 모양과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여기 마을도 모양이 소쿠리 모양하고 비슷하고 또 노나라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서 ‘작은 노나라’, ‘소노마을’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라고 한다.
이에 대해 향토사학자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소노는 ‘작은 노나라’라는 뜻에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소노를 ‘소태’라고 했다. ‘소생할 소’자에 ‘클 태’자를 써서 ‘소태’라고 불렸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소태를 ‘소토’라고 고쳤다. 그래서 소토리가 됐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이야기는 ‘소노’가 ‘형제간’이라는 것이다. 소노서원에 모셔진 두 분의 호가 한 분은 소산이고 한 분은 노산이다. 이 분이 향교에서 공자 위패를 모시고 다른 곳으로 가서 지켰기 때문에 조선의 공신이 되었다.
형제의 이름은 정호인, 〉정호의이고, 정호인의 호는 ‘소산’이고 정호의는 ‘노산’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다. 그때는 ‘소’자가 ‘적을 소’자가 아니고 ‘깨어날 소’자를 쓴다. 지금은 소노를 ‘적을 소’자로 쓰는데, 과거에 소태라고 부를 때는 ‘깨어날 소’자를 썼던 것으로 봐서 ‘적을 소’자가 쓰기가 쉽고 ‘깨어날 소’자가 쓰기가 어려우니까 쉽게 쓴다고 ‘깨어날 소’자를 ‘적을 소’자로 바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정동찬, 양산시 향토사연구회 총무, 65세 )
이 외에도 양산의 고대사와 얽혀 지명이 설명되기도 한다. 향토사학자인 정진화 선생은 ‘소토’라고 하는 것이 제사를 지내는 곳인 ‘소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율리 지명도 ‘밤나무 율’자를 써서 밤나무와 관련이 되며 옛날에 제사지내던 곳이 밤나무가 있었던 곳으로 미루어 보아 옛날 제사와 관련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것이다.(정진화, 양산시 향토사연구회장, 75세)
향토사학자들과 주민들의 주장은 이곳 일대가 조선시대 이전에는 중심 지역이었다는 자부심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주장은 효충 지명이 신라 충신 박제상의 출생지였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과, 소노마을 앞에서 발굴된 지석묘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마을의 지명유래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흘려들을 수 없는 소중한 마을의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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