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D01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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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명환 |
도시화되기 이전에 이곳 명동은 참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 회야강이 흐르고 대운산의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면서 마을 앞으로는 넓다란 논밭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참 살기 좋은 마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장님의 말에 따르면, 이곳 명동은 눈도 많이 안 오고 비도 많이 안 오고 바람, 태풍의 피해도 거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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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다란 논밭
다음은 이장님의 말씀이다. “여기는 참 좋은 게 눈도 많이 안 오고 비도 많이 안 오고 바람, 태풍도 많이 안 불고 참 살기 좋습니더. 시명저수지 저쪽으로 물도 많습니더. 땅 값 비싸지, 좋습니더. 진짜 여기 물어보이소. 여기는 진짜로 풍수해가 진짜 없습니더. 다른데 뭐 집이 떠내려가네 어쩌네 뭣이 어쩌고 해도 여기는 하나도 없습니더. 우리 마누라도 여기 시집 온 지 30년, 40년 다 돼가도 그런 거 하나도 못봤으니까예. 마누라는 원 고향이 저쪽 건너 울산 여천동이고 여천동이 공장 자리가 되는 바람에 과수원하다가 왔습니더. 진짜 여기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라서가 아니고, 옛날에는 몰라도 현재는 가뭄도 없고 진짜로 살기 좋은 마을입니더.(이자무, 명동마을 이장, 62세)
오늘날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변화되면서 부산시와 울산시는 점점 확대되고 마을 앞으로 넓은 도로가 개통되었다. 논밭은 도시 외지인들이 구입하기 시작하였고, 구획정리가 되기 시작하였다. 아파트가 마을 속으로 파고들었고, 전원주택도 한 채 두 채 세워졌다. 그리고 태양열 주택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하면서 농민들과 도시인들이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또한 마을 주변에는 여러 기업이 들어서게 되는데, 그 기업들은 마을주민들과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하여 결연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1984년 7월 27일 명곡마을과 대동광업이 결연을 맺어 상호간의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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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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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열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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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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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빌라
아파트와 빌라가 예전에 비해 많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커져 분리되어 나갔다고 한다. 명동마을은 직장을 따라서 부산, 울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고 정관면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기존에 정관에 있던 땅을 팔고, 여기 있는 땅을 사가지고 정착하러 온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산, 부산 등지로 출근하는 사람들이고, 정작 농사짓는 사람들은 68명이라고 한다. 이장님의 말씀처럼 명동마을은 다양한 삶의 모습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다음은 이장님과의 대화내용이다. “세대는 한 800세대 좀 넘습니더. 아파트는 빼고 우리 요 순수한 명동마을만 800세대 조금 안됩니더. 7백 한 8십에서 9십 세대 될낍니더. 동네가 커서 그렇습니더. 여기도 마을이고, 저 아래 저 밑에도 마을이고, 저도 마을이고, 요 아파트 있는 이쪽도 마을입니더. 아파트 이것도 같은 마을인데 아파트를 지어서 독립해 나갔습니더. 빌라 이런 것도 많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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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빌라가 6개나 되니까예. 보통 보면 지금 현재 우리 원주민들은 한 200세대? 186세대 정도? 200세대 조금 못 됩니더. 그 다음에는 인제 다 세 들어 온 겁니더. 부산서도 오고 울산서도 오고 직장에 따라서, 여기 공장이 있으니까 부산서도 오고 울산서도 오고 정관 쪽에서 많이 왔습니더. 정관에 신도시 때문에 이 마을로 많이 왔습니더. 객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다 직장 따라서 온 것이고 또 정관신도시가 개발되는 바람에 거기 있는 땅을 팔고 여기 있는 땅을 사가지고 정착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예. 정관에서 정착하러 온 사람들이 한 60~70세대 정도 될 거고 그 다음에는 나머지 뭐 다 직장 따라 왔다 하데예. 그라고 나서 나머지 순수 농사짓는 사람들은 68명 정도 됩니더.” (이자무, 명동마을 이장, 6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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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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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사람들
이장님의 말씀처럼 명동마을은 다양한 삶의 모습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외부에서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이야 생활 패턴이 너무 다르니 함께 어우러지는 데에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오래 마을에 함께 한 사람들끼리의 친목은 다른 그 어느 마을 저리가라를 외칠 정도로 최고의 마을이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다 아우를 수는 없음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 정도나마 마을 사람들이 뭉칠 수 있음이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