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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유학자. 자는 여윤(汝胤), 호는 경산(耕山). 나이인(羅以仁)의 후손이다. 성품이 엄격하면서도 너그럽고 온화하였으며, 마을에서 유학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고종(高宗)이 나라 일을 살피기 위해 돌아다닐 때 불러서 마주 대하였다.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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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자는 인언(仁彦), 호는 초정(樵亭). 할아버지는 김종렴(金宗濂)이다. 김상영은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이후 복시(覆試)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평소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선사재(選士齋)에 거처하며 동학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거상(居喪) 3년에 행실이 소박하기가 한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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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순경(舜卿), 호는 몽천(蒙泉), 삼옥당(三玉堂).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며, 김재연(金在衍)의 동생이다. 학문에 힘써 성리학의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에 밝았다. 유정재(柳定齋)의 문인(文人)이다. 양산(陽山) 조충식(趙忠植), 동계(東溪) 한긍인(韓兢人),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몽천재운(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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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수성(壽城). 호는 북헌(北軒). 양절공(養節公) 나익희(羅益禧)의 후손으로 하동부사 나순손(羅順孫)의 7대손이며, 참봉(參奉) 나경문(羅景文)의 고손자이다. 안시명(安諟命)의 손자사위이다. 천성이 착하였고 어버이를 섬기는 데 효성을 다하였다. 성리학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뜻을 밝혀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손처눌(孫處訥)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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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자는 욱여(旭汝)이고, 호는 법촌(法村). 음덕(蔭德)으로 벼슬을 한 박이혁(朴以赫)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박경홍(朴景洪), 아버지는 박세영(朴世英)이다. 법도로써 집안을 다스리고, 도리로써 일을 처리하였다. 덕망이 있어 사람들이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있는 선비’라고 칭찬하였다.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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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선(化善).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후손이다.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재주와 기예가 남달랐다.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남김없이 읽어 학문이 뛰어났다. 자신을 연마하여 행동을 깨끗이 하였고, 후진을 깨우치는 데 앞장서 친구들이 존중하여 우러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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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성장(成璋), 호는 만익(晩益). 아버지는 양산방씨 시조인 방태경이다. 방태경은 방송현(房松衒)과 방송구(房松九) 두 아들을 두었으며, 방송현의 아들은 방규(房圭)로 이조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방송현은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기에 활동하였던 인물로 추측되며, 중앙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예부참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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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도언(道彦), 호는 창산(昌山). 양산방씨의 시조인 방태경의 후손이며, 양산 지역 출신으로 명망이 높았던 방익(房翼)의 후손이다. 방채수에 관하여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양산 문행(文行)조에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으며 재능과 기예가 뛰어났고 슬기로웠다. 말은 어눌했으나, 일을 처리하는 것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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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윤보(允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누정 경현당(景賢堂) 조에 의하면 “자는 윤보이고, 본관은 분성으로 영조 때 가선대부를 추증받았다. 효행으로 여러 번 천거받았다”라고 한다. 경현당은 양산시 북부동에 있었는데, 고을 유학자 박천수(朴天銖)·유인협(柳寅協)·이철호(李喆鎬)가 뜻을 함께한 사람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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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진언(震彦), 호는 송은(松隱). 송담(松潭) 백수회의 후손이다. 1864년(고종 1) 호위영(護衛營)에서 타어평(鼉魚坪[메기들]에 강제로 세금을 부과하여 민폐가 극심해지자 백동호(白東浩)는 자신의 안일을 돌보지 않고 감영(監營)에 정소(呈訴)하여 세금을 면제받게 하였다. 또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앞장섰고, 향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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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치오(致五), 호는 만회(晩悔). 아버지는 통정대부 백유익(白有翼)이다. 아들은 부사과(副司果) 백동휴(白東畦)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유행(儒行) 조에 의하면 “타고난 성품이 뛰어나고 총명하였으며, 덕행과 재주가 있었다. 자식을 가르치면서 만년을 보냈고, 정신을 수양하고 몸을 잘 닦아 유학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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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붕지(鵬之). 양산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인 송담(松潭) 백수회(白受繪)의 후손이다. 아들은 백사정(白思正), 손자는 백동휴(白東畦)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수직조(壽職條)는 백유익에 대해서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면서 경솔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위를 굳게 지켰던 인물이었다. 선조의 가르침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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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신안남은 조선 중기 양산 지역 화제(花濟)[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지역]에 살았던 인물이다. 문목공(文穆公)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동향(同鄕)인 최흥국(崔興國)과 시문(詩文)을 서로 주고받는 사이였으며, 임진왜란 때 동향인 백수회(白受繪)와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지만 뜻과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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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廣州). 할아버지는 일야당(一也堂) 안효필(安孝弼)이다. 안효필은 안우(安宇)의 후손이다. 안종철은 1510년(중종 5) 여름에 삼포(부산포·제포·염포)지역에서 왜란이 발발하자 자원 출정하여 전공을 많이 세웠다. 『진중유집』이 있으며, 그 중 「병상유감시(病床遺感詩)」에서 ‘생사가 공간에 처해 있으니 무엇이 있고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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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고봉(高峰). 회암 안유(安裕)의 후손이다. 안처익은 향촌사회에서 후진들에게 학문을 권장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가르치며 자연 속에서 은거하며 살았다고 한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의하면 ‘호는 고봉(高峰)이고, 본관은 순흥으로 회암 안유(安裕)의 후손이다.’라고 하였다. 경현당(景賢堂)은 양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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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대견(大見), 호는 일야(一也).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계사에 배향된 계산(戒山) 안우(安宇)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만성재(晩惺齋) 안평중(安平重)이고, 아들은 안병원(安昞遠)이다. 일찍이 집안의 가르침을 배웠고, 시문을 짓는 재주가 남달라 이름을 떨쳤다. 마음을 다하여 성명(性命)과 이기(理氣)를 연구하였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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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조선 전기 성종 때 도승지를 역임한 대봉(大峯) 양희지(楊熙止)[1439~1504]의 후손이다. 양의화는 선현을 존중하여 우러러보며, 학문과 덕행에 정진하였다. 송담서원에 힘을 쏟았으며, 유림을 주관하여 임금께 편액(扁額)을 청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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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의 선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진(元眞), 호는 우남(愚南).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양산에서 학행으로 이름을 얻은 사람으로, 총명하고 뛰어났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다. 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가난한 친구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도와주기를 좋아하였다. 고종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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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경보(擎甫).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의 후손이다. 임도의 증조부는 광해군 때 정인홍의 미움을 받아 양산 지역으로 유배를 왔다가 인조반정 후 광주목사가 되었으나, 이괄의 난 때 적에게 사로잡혀 죽은 임회(林檜)이다. 임도의 손자는 양산 지역에서 유일(遺逸)로 알려진 임경택(林景澤)이며, 증손자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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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지역에 자리잡은 유생. 조선시대 양산 지역의 유일(遺逸: 학식과 덕이 높았지만 관직에 등용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 중 한 명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원백(遠伯). 호(號)는 모성재(慕聖齋). 정재(正齋) 정지송(丁之松)의 후손이다. 정득은 타고난 바탕이 뛰어나게 총명하였고, 거동과 외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다. 지조를 굳게 지켰으며,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