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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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가산마을은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본격적으로 주거가 형성된 시기는 지금부터 800여 년 전인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시대 초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복세부락 앞의 들과 초지는 약 500년 전에는 낙동강 유역으로 갈대와 모래밭이었다. 여기에도 1500년대 초부터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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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리의 소노마을은 동래정씨가, 율리마을은 광주안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소노마을 지명은 작을 소(小)와 나라 노(魯), 즉 작은 노나라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작은 나라라는 뜻에 맞게 동리를 중심으로 밖의 마을을 외리, 안 골짜기에 있는 내리, 마을 뒷산 이름을 ‘하늘 만딩’이라고 불러왔다. 소노마을은 동래정씨 문중을 중심으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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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당리는 이웃 고을 밀양의 삼랑진과 천태산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천태산(630.9m) 남쪽에 위치한 천태사[천태정사)에서 용연폭포에 이르는 계곡은 장사바위, 수자굴바위 등 기암절벽과 더불어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 산은 임진왜란 때 승려들의 훈련장이었으며, 천태정사와 수자굴 바위, 장사바위가 계곡폭포 뒤에 위치하고 있다. 오의정 전설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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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역사. 양산의 고려시대 지명은 양주인데, 김인훈 등의 호족 세력이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적극 동조한 이후 지역 행정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아울러 양주에는 울주와 함께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는데, 이는 양주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 지역임을 말해준다. 일시적으로 동래현과 기장현을 속현으로 관할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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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국가의 감독 아래 공공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기관이나 단체 중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자 사행정, 사조직, 시민 사회 단체, 민간 단체, 기타 사설 기관 등과 구분되는 공조직으로 공공 서비스와 공공 재화를 생산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관공서로 통칭하는 국가 행정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법인으로 분류되는 정부 투자 기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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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지도는 향토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볼 수 있는 도구이다. 이는 지도가 종합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양산의 모든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양산의 고지도는 제작 당시의 위치 정보를 이미지로 전달하기 때문에 텍스트로 쓰인 지리서보다 위치 파악에 효율적이다. 따라서 양산의 고지도는 양산 지역의 향토 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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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둘러보는 유람 활동. 양산은 부산과 울산의 대도시적 배경과 김해 및 밀양의 촌락적 배경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으므로 양산의 근원적 기능 뿐만 아니라 배후 지역의 수요에 대처하여 발전해야만 한다. 특히 양산은 주택 기능, 공업 기능, 도시민의 관광 휴양 기능 등을 고려하여 도시 기능을 선택하고 선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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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의 세거 성씨.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으로 광주군에 봉해진 안방걸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판사공 안몽득의 손자 안우(安宇)가 입향하여 형성된 봉사공파이다.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大將軍)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광주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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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지역에서 기온·비·눈·바람 등 대기의 종합 상태. 한반도의 동남단에 위치하는 데다 겨울 기간 찬 북서풍을 막아주는 영축산맥이 북북동에서 남남서로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어 기온은 대체로 온화하다. 강수량 또한 남해안 다우지역에 인접하고 있어 우리나라 기후 구분상 이른바 남해안형에 속한다. 그러나 내륙의 산간 분지 지방이어서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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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 국가 하천인 낙동강의 하류는 부산광역시·경상남도 김해시와 마주하면서 양산시의 서쪽 경계를 이룬다. 양산시에 해당하는 낙동강은 원동면 하주막에서 남동으로 흘러 동면 호포리에 이르는 길이 19.3㎞로서 양산 지역에서 발원하거나 관류하는 원동천·화제천·양산천이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낙동강은 9차수 하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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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일대에 설치된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증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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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제리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내화’라고 칭하였다. 원래 양산군 서면 화제리는 내화촌과 외화촌(外化村)으로 양분되어,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때까지 약 10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내화촌과 외화촌의 경계를 알 수는 없다. 『양산읍지초(梁山邑誌草)』(1878)에는 “내서사창이 내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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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용당은 낙동강을 경계로 김해와 접하고, 천태산을 사이에 두고 밀양 삼랑진과 경계한다. 마을의 사방이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다른 마을로의 이동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양산이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김해나 삼랑진 또는 구포로의 이동이 쉬웠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 배를 타고 수로를 이용하여 다녔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에서 육로보다는 수로가 대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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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밀양 단장면에서 하천을 따라 배내골로 언양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고, 큰 들판이 있는 곳이라 하여 대리(大里)라고 하였다. 대리는 임진왜란 때 모여든 피난민으로 큰 마을을 형성하였고, 청도김씨와 김해김씨가 먼저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786년에 편찬된 『양산군읍지』에 보면 서면 이천리(梨川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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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임진왜란으로 모여든 피란민으로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하여 ‘대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대리마을은 배내골에 있으며 대리마을·고점(古店)마을로 형성되었다. 1786년에 서면 이천리(梨川里)로 통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때 대리동(大里洞)·선동(善洞)으로 분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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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 출신으로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 양산 지역에서의 본격적인 항일 독립 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양산 지역에서는 인근의 밀양이나 울산 지역에서처럼 3·1운동을 주동적으로 이끈 비밀단체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윤현태와 같은 선각자들이 조선국권회복단에서 활동한 만큼 윤현태의 영향을 받은 지인과 후배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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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물금(勿禁)은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황산역(黃山驛)[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물금취수장 자리]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북쪽의 밀양과 삼랑진, 남쪽의 김해 칠성포·부산포를 연결하던 황산나루(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물금취수장 입구)가 위치했던 낙동강의 주요 교통 요지였다. 이러한 연유로 조선 후기 개시된 물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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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봉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밀양박씨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며, 박언침이 봉군받은 밀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는 성씨이다.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크게 여러 본으로 나누어졌고 그 뒤 다시 여러 파로 분파되었다. 『박씨선원세보(朴氏璿原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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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신자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밀양손씨는 신라 개국공신으로 문의왕(文義王)에 추봉된 구례마(俱禮馬)를 원조로 하고 있다. 시조는 손순(孫順)이다. 밀양(密陽)은 지금의 밀양시 일원에 있던 지명으로, 삼한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했으며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었다고 한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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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6년 박경영(朴瓊榮)과 김남이(金南伊)의 차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심금순(沈今順)과 결혼하였으나, 사별한 후 최명이(崔名伊)와 재혼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1947년경부터 양산시 원동면 원동초등학교 앞에서 한약방을 경영하였으며, 1959년 1월 타계하였다. 박대희(朴大禧)는 일제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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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선(化善).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후손이다.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재주와 기예가 남달랐다.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남김없이 읽어 학문이 뛰어났다. 자신을 연마하여 행동을 깨끗이 하였고, 후진을 깨우치는 데 앞장서 친구들이 존중하여 우러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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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국빈(國賓),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박중미(朴中美)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박주한(朴柱漢)이고, 할아버지는 박동석(朴東奭)이다. 박정빈은 창원부사 외에도 현감·영장·방어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금정산성을 축조한 공으로 길이 잘 든 말을 하사받았다. 금정산성은 경상도관찰사 조태동이 1702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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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 있는 허브 관광농원. 관광농원은 농어민이 농어촌 지역의 자연 자원과 농림수산 자원의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관련 특산물을 판매하거나, 각종 영농 체험 프로그램이나 숙박·체육·휴양 시설 등을 갖추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영위하는 농원이다. 1996년 송림 자연 농원으로 설립되었다. 1998년 관광농원으로 지정되면서 송림 관광농원으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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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면 범어리 일대에 설치된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증동국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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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아주머니 두 분께서 담소를 나누며 딸기를 따고 계신다. 반가워 인사를 드리며 여기 어디 사시냐고 물으니, 이 지역 사람이 아니란다. 아주머니들께서는 삼랑진 사람이라면서 여기 하우스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고 하신다. 이처럼 용당들에서는 딸기농사의 노동력은 자가 노동력 외에도 일꾼들을 많이 쓴다. 딸기농사를 하는 경우에는 일손이 많이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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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양산의 산지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척량 산맥인 태백산맥의 말단에 해당되며, 이 말단부가 신생대 제3기 중신세부터 일어났던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축을 가진 양산단층·울산단층 등 일련의 단층 운동에 의해 포항 부근에서 두 갈래로 분기된다. 그러므로 남남서 방향으로 달리다가 양산 지방에 와서는 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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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넓은 의미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사회적 유통 활동을 촉진·조성하는 금융업, 운송업, 보험업, 창고업 등도 넓은 의미로는 상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상업은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재화의 매매 활동만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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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에는 읍성을 비롯하여 신기산성(성황), 북부동산성(동산성), 우불산성, 마고산성(고장성), 단조산성 등 성곽이 적지 않게 축조되었다. 이곳은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양산 물금까지 힘차게 흘러 들어와 한 번 숨은 쉬는 장소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밀양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낙동강이 합천 황강에서 흘러오는 또 다른 줄기와 어우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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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고개. 신안치를 분석해 보면 고개를 뜻하는 치(峙) 자와 속성을 나타내는 신안은 자체가 고유 지명이거나 아니면 신(新)과 안(安)의 합성지명일 가능성이 크다. 양산 지역에 신안이라는 지명이 없고, 또한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신안은 합성지명일 가능성이 크다. 양산 지역의 자연 마을에서 신(新)의 글자가 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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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신평장은 조선시대에 이미 밀양 지역 주민들이 한피기고개(929m)를 넘나들면서 이용할 정도로 넓은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1919년 3월 13일 신평장 터에서는 통도사 학림 학생들과 지방 학림 학생들이 주동이 된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공식적으로 신평장은 1942년에 개설되었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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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양산 출신으로 큰 공을 세운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조선 전기 중종 때에 평산부사를 지낸 안우(安宇)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안근(安瑾)이며, 형 안시명(安諟命)과 사촌으로 안신명(安信命)이 있다. 안이명은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합격하였으며,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아버지 안근을 따라 형, 사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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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낙동강이 합천 황강 쪽에서 흘러오는 또 다른 줄기와 어우러진 삼량진부터 그 위용을 갖추니 여기서부터 물금까지 도도히 흘러내리는 모습은 차라리 장중한 교향악 같다고나 할까. 특히 낙동강 하구는 폭이 좁게 마감되어 그 흐름이 더욱 유장해 보이는데 어떤 풍수가는 그로 인해 영남에 인물이 많고 부자가 많이 난다고 한다. 강이 좁기 때문에 넘쳐흐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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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대성암에 있는 조선 전기 목판본 『집주두공부초당시(集註杜工部草堂詩)』. 『집주두공부초당시』는 중국 남송(南宋) 때 채몽필이 당(唐)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시에 대한 여러 주석을 모아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두공부’는 두보가 공부원외랑이란 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두보가 중국 성도(成都)의 초당에 거주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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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양산 포교당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관음보살 좌상. 양산 포교당 석조 관음보살 좌상은 석조 관음보살 좌상으로, 2007년 11월 개금불사 과정에서 발원문과 「관세음 성상도 분발 원문(觀世音聖像塗粉發願文)」[1893년 제작], 후령통,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을 통해 1688년(숙종 14) 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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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사용되는 토박이 언어. 양산방언은 부산방언의 한 가닥으로 볼 수 있는데, 형태에 있어서는 김해·밀양·울주와 꽤 다르지만 인접 지역이므로 다소 영향을 받고 있다. 양산방언의 특징을 소리(음운), 씨끝(어미), 토씨(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닿소리: ‘ㅆ’은 ‘ㅅ’으로 소리가 난다. 예) 밥 짓는 쌀 → 살, 책을 책보에 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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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여덟 곳의 향토 명승지. 팔경(八景)은 향토 문화의 산물이고 향토의 경승지이다. 향토라 함은 지역 주민들이 산, 산봉우리, 강, 바다, 섬, 계곡, 절벽, 폭포, 계곡, 마을 뒷동산, 주위 산지의 기암괴석 등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정든 땅이자 고향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향토 경승지는 자연 관광 자원을 중심으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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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과 원동면에 걸쳐 있는 산.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 표기는 ‘영취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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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장수황씨의 재실. 재실 이름을 오린재라고 한 이유는 후손들의 기록에 잘 드러난다. “장수황씨의 조상 중에 고려 후기, 조선 전기에 황희(黃喜)가 있었으니 곧 방촌 선생이다. 선생은 문장이 세상에 으뜸이요 정략의 도와 청렴 결백한 자질은 여항의 필부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흔의 노령에 이르도록 세종대왕을 보필하여 그 치적의 많음은 지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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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의 오의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오의정은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었던 정자이다. 원래는 이름 없는 정자로 오가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던 곳이었는데, 조선시대 어느 밀양부사에 의해 오의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983년에 발간된 『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임지로 취임해오던 밀양부사가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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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당들에 봄이 오면 곳곳에서 새콤한 딸기 냄새가 밴다. 하지만 지금의 용당들의 모습과는 달리 옛날 이곳에서는 대부분 논농사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벼농사는 딸기농사보다는 일이 많이 없어 벼농사를 짓는 것이 더 쉽지만, 논농사는 지어 봤자 남는 게 없어 대부분의 농부들이 지금은 딸기농사를 하고 있다고 딸기를 재배하는 김갑식이 말한다. 용당들에서 논농사 대신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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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당리는 가야진사(伽倻津祠)가 있는 유서깊은 고장이며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사조(祭祀條)에 의하면 사독(四瀆) 중 하나인 황산강(낙동강 하류)에 가야진사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민속 행사로서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당곡마을 당산제와 중리마을 당산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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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수원김씨 재실. 운곡재는 수원김씨가 1600년대 밀양으로부터 이사를 와 양산 입향조가 된 운곡 김중채를 위시한 51위를 봉안한 곳이다. 김중채는 1675년(숙종 1)에 태어났고, 이조참판을 지냈다. 1963년 건립했고, 지금 건물은 1995년에 다시 지었지만 나무를 잘못 사용해서 벌레가 파먹어 썩고 있다. 보수가 필요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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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경상남도 양산시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동면 소재지는 원리에 있다. 면조(面鳥)는 꿩, 면목(面木)은 느티나무, 면화(面花)는 배롱나무꽃(백일홍)이다. 삼국시대 용당리에는 신라에서 가락국으로 통하는 수로인 가야진나루가 있었다. 신라와 가락국이 밀양군과 양산군을 거쳐 가는 경계 지점에 작원관원문(鵲院關院門)이 있어 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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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에 원동관이 위치한 곳에 있었던 나루. 양산 지역에서 밀양으로 건너가던 나루로, 원래는 원동관이 있던 곳이라 원동이라 불렸고, 원댕이, 원리라고도 불렀다. 원동은 신라와 가락국의 국경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이곳에 작원관원(鵲院關院)을 두고 육로와 뱃길을 감독, 관리하였다. 그래서 ‘원이 자리한 마을(洞)’이라는 뜻의 ‘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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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동 또는 원댕이라 하였다. 신라와 가락국이 수로 및 육로를 이용하여 김해와 밀양으로 내왕하던 교통 요충지로서 중리마을 서쪽에 국경수비대라 할 수 있는 작원관원(鵲院關院)이 있었다. 여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원리(院里)라고 하였다. 원리에 거주가 시작된 것은 삼한시대로 추정된다. 삼한시대부터 황산강(지금의 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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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안종석 선생은 양산 향토문화 연구의 거목이었다.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한 안종석가 1984년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뒤 미망인 김순덕에 의해 발간된 『석헌집(石軒集)』(1992)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간추려 적으면 다음과 같다. 고 안종석 선생은 광복 후 박제상을 기리는 사당을 거금의 사비로 세움으로써 민족정신을 바로잡고자 했다. 1949년에는 협소한 소토초등학교를 사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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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양산(梁山). 이징석의 4대손이다. 처는 위원군수(渭源郡守) 김효량(金孝亮)의 딸이다. 이몽란은 임진왜란 전 왜구의 침입을 미리 탐지하고 밀양·청도 등지의 선비들과 함께 왜구 침략에 나름대로 대비하였다. 실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근·이수생·최흥국 등과 참여하여 양산·울산·경주·팔공산 등지에서 싸우고 화왕산 전투에도 참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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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내화마을의 이파랑 영농조합에서 재배되는 친환경 무농약 채소. 내화마을이 위치한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는 양산과 밀양을 잇는 중간 지역으로 인근에 토곡산과 낙동강을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한 것은 물론이고, 특히 공기가 맑아 깨끗하고 질 좋은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 가운데 놓여 있다. 주변에 공장이 없고 오염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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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형·지질·기후·자연재해 등의 자연지리적 환경. 양산시의 위도 및 경도상의 위치는 동단이 동경 129° 13′, 서단은 동경 128° 52′, 남단은 북위 35° 16′, 북단은 북위 35° 32′이다. 수리적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산은 중위도에다가 유라시아 대륙의 동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대상 온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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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는 장선마을과 태봉마을의 두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태봉이라는 말은 임금의 태가 묻혀 있는 봉우리를 뜻하므로 명당 자리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로부터 미곡을 생산하고, 약초 채취로 부업을 하며 영세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에는 과학적 영농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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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태조 1)부터 1910년(순종 4)까지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시는 1413년(태종 13)에 양산군(梁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동래부(東萊府)에 편입되었다가 1603년(선조 36)에 복구되었다. 1897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읍내(邑內)·동면(東面)·상서(上西)·하서(下西)·상북(上北)·하북(下北)·구포(龜浦)·대저(大猪)의 8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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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격전지 가운데 하나가 낙동강 변에 있는 양산 일대이다. 왜군이 동래성을 함락하고 영남로를 따라 서울로 진격하기 위하여 거쳐야 할 곳이 바로 이곳 양산 일대였다. 조선의 밀양부사 박진은 왜군의 침입을 대비하여 삼랑진 부근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이 지역에는 작원(鵲院)이 있었는데 이곳은 낙동강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관문이었다. 물론 육지에서 낙동강을 따라 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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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통로가 발달되지는 않았으나 교통로들 중에 사람들의 이동이 많고, 중요한 길들인 ‘대로’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7대로’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영남에서 한양(서울)으로 가기 위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바로 영남대로이다. 영남대로는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길로 오늘날의 부산~양산~삼랑진~상주~문경~충주를 연결한다. 또한 영남대로는 단순히 교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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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800여 년 전 평해황씨가 입촌하였다고 전하나, 진주하씨, 문화류씨가 많이 살고 있다. 삼한시대부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던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가야진나루가 용당리 앞에 있었다. 중리마을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묘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가야시대 옥정승묘지라 부른다. 한양으로 왕래하던 통행인을 감시하던 교통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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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서 모를 다 쪄갈 무렵 부르는 노동요. 양산 지역의 모찌는 소리는 교창식의 긴 모찌는 소리와 잦은 모찌는 소리로 나눌 수 있는데, 잦은 모찌는 소리는 조루자 계열과 밀치라 계열이 대종을 이룬다. 잦은 모찌는 소리는 긴 모찌는 소리를 부르며 모를 쪄 나가다가 좀 지겨운 감이 있거나, 일을 더 재촉하여 마쳐야 할 경우, 또는 모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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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풍산홍씨 재실. 홍우적(洪禹績)은 풍산홍씨 시조 홍지경(洪之慶)의 14세손으로 자는 대여(大余)이고, 호는 취우(聚愚)이며,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홍우적은 약 400년 전에 밀양으로부터 이곳으로 이거하였다. 취우재는 홍우적을 위시하여 그 후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89년에 건립되었다. 매년 추향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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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마을 언덕을 넘어가면 장밭들이라고 불리는 넓은 들판이 나온다. 이곳은 통도사 소유의 땅이다. 본래 통도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이래 고려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통도사의 소유토지를 알려주는 국장생석표 등이 멀리 밀양에 있는 것을 볼 때 이러한 정황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억불정책을 시행하였으나 통도사의 소유토지에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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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과 물금읍 물금리, 원동면 화제리, 원동면 용당리에 걸쳐 있는 산책 및 자전거 길. 부산광역시 낙동강 하굿둑에서 안동 댐까지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 총 길이 389㎞ 가운데 경상남도 구간은 창녕~합천~의령~함안~창원~밀양~양산을 잇는 총 123㎞에 걸쳐 있다. 양산시 관내에는 동면 호포에서 낙동강 변을 따라 물금읍 물금리와 원동면 화제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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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 직속 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 양산 지역에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 아니라 군수(종4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다. 황산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